그들을 잃어가는 이야기, 2019
; 자료 조사
'I'의 아버지, 그리고 그의 부모.
그들은 I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자, 동시에,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들이기도 했다.
이것은 그들의 이야기이다.
여기 B와 A, 그리고 Y와 C가 있다.
우리는 이미 그들을 잃었다. 사실, 우리가 그들을 잃기 훨씬 오래전에,
그들은 스스로를 잃었지만, 아무도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었다.
다만, I는 그들을 잃을 수 없었다. 처음부터 그녀는, 그들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I만이, 그들에 대한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
나는, 'I' 다.
1. A
I에게 A는, '완벽한 늙음'이었다. I의 세상 안에서 그는, 언제나 항상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늙음을 가지고 태어나는 이는 없다 했지만, I는 A의 젊음을 본 적이 없다. 조용히 웃는 낯으로 사람을 대하던, 키가 크고 운동과 술을 사랑했던 A는, 젠틀하고 착하고 무책임한 늙은 사람이었다.
어릴 적 A는, 중국과 가까운 한반도의 북쪽에 살았었다.
그의 어머니는 사업 수완이 좋아, 중국에 커다란 만물상을 열었고, 그는 풍족하게 자랐다.
열여덟이 되자, 그는 붉은 말을 타고 만주벌판을 달리며 어머니의 사업을 도왔고,
스물이 되기 전에 결혼해, 두 딸을 두었다.
한반도를 집어삼켰던 일본은 35년 만에 돌아갔고,
해방을 기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라가 둘로 갈라질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중국에 가까운 북쪽은 공산화되고, 미국에 우호적인 남쪽은 민주화된다.라고 했다.
그와 주변의 사람들은 세상 물정에 민감했다. 곧 거대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A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알았다.
사실, 그 이유라는 것이 이해되지는 않았다.
그 오랜동안 하나였던 이 나라를 왜 둘로 갈라놓는지, 과연 그것이, 이 나라와 백성들을 위한 것인지...
하지만, 생각할 시간이 없다. 공산당들은 곧 들이닥칠 것이고, 그들은 부자들을 싫어한다고 했다.
그들은 부자들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부자들의 목을 매단다고 했다.
살고 싶다면 지금, 도망쳐야 한다. 그는 부인에게 돌아오겠다 약속하고, 남으로 야반도주한다.
약속은, 헛되었다.
북은 북 대로, 남은 남 대로, 대표를 뽑고, 각각 위원장, 대통령이라 불렀다.
한 나라에 황제가 둘일 수 있나? 그는 대한제국을 살았던 사람이니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남과 북은 합칠 기색이 없었고, 서로를 죽일 듯 헐뜯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그는 깨달았다.
집을 떠나 남으로 건너온 순간 그는, 재산과 가족을 모두 잃은 것이다. 그는 빈털터리고, 혼자이다.
그의 울음은 허망하고 무가치했다. 할 수 있는 일에 매달려야 했다.
먹을 것이 부족한 계절이었고, 죽는 것이 예사롭던 시절이었다.
일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것이며, 생각이 깊어지면 감옥에서 죽을 것이다.
생각하지 말고, 하루하루 살아갈 궁리를 해야 했다.
그의 타고난 근면함과 어려서부터 배운 사업 수완은, 그를 돋보이게 했다.
어찌어찌 일하게 된 곳에서 그는, 사장의 눈에 띄었다.
사장에게는 분단으로 남편을 잃은 딸이 하나 있었고,
딸과 같은 이유로 가족을 잃은 A를, 사장은 눈 여겨 보았다.
얼마 후, A와 사장의 딸은 약혼한다.
2. Y
I에게 Y는, '화난 가면을 쓴 사람'이었다. I의 기억 속 할머니는, 항상 찡그린 얼굴로 화를 냈었다.
작고 하얗고 소싯적에 참으로 예뻤다던, 그리고 여전히 고왔던 할머니 Y. 그녀는 어째서인지 A, C, I에게 웃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었다. 자기 연민에 빠져, 자신의 삶 일부를 송두리째 드러내고자 했던 그녀는, 삶에 화가 난 사람이었다.
Y의 남동생에 의하면, 그녀는 부잣집 첫째 딸이었다.
주변의 사람들은 그녀를 사랑했고, 동생들은 그녀를 잘 따랐다고 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서울에서 크게 사업을 했고, 그들은 일본식 정원이 멋진 저택에서 살았다.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을 당시, 일본에서 온 고위 간부를 위해 지어진 집이라고 했다.
그 저택에서 사람들은 그녀를 '큰 애기씨'라고 불렀다.
Y는 어여쁜 소녀였다.
공부를 곧 잘하고 명랑한,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사랑했던, 햇살 같은 소녀.
그런 그녀는, 무엇이 되지 못했다.
시대의 소녀들처럼,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할 겨를없이, 결혼했다.
일제가 어린 소녀들을 위안부로 강제징용하자,
그녀의 아버지는 그들의 눈을 피해, 그녀를 저 멀리 강원도 산골로 시집 보낸 것이다.
작고 하얗고 공부를 썩 잘했다는 그 어린 소녀는,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지 못하고
그렇게 시집을 갔다.
아름다운 것을 본능적으로 사랑했던, 부유한 서울 아가씨는 산골의 생활을 견디지 못했다.
그녀는 첫아들을 낳았고, 출산 후에는 친정에 자주 머물렀다고 한다.
문득, 그녀는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이 되고 싶은 무언가는, 지금의 그녀가 아니라는 것을,
자신은, 누군가를 위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나
아무리 방황하고, 저항해도, 현실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 또한,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 이상하리만큼 갑자기, 혹은 그 시절만큼 혼란스럽게 –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갈라졌다.
친정에 다니러 왔던 Y와 아들, 그리고 강원도 북쪽의 남편은 그렇게 이별했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 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세월이 흘렀다. Y의 아버지는 성실하고 과묵한 A가 마음에 들었고, Y는 그가 싫지 않았다.
둘은, 약혼했다.
3. B
I에게 B는, 생의 '첫 기억인, 죽음'이었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그녀는, 4살 된 손녀(I) 앞에서 죽었다.
손녀에게 고구마를 간식으로 주려던 B는, 대청마루에 걸터앉으려다 쓰러졌다. 쓰러진 B를 위해, I는 울며불며 일하는 엄마에게 뛰어갔었다. 그녀는 커다랗고 무서운 얼굴로, I를 창피하리만큼 사랑했던 희미한 사람이었다.
B의 아버지는 덕망 있는 집안의 장자였다.
그는 철저히 유교적인 인물로, 실력이 출중했고, 소신에 타협이 없었다.
모두가 우러르는 그는, 딸들에게는 최악의 아버지였을 것이다.
그는 자식 중, 여자는 가르치지 않았다. 그래서 B는, 글을 몰랐다.
그 집안의 여자들은 어떠한 사회 활동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착한 딸이었고, 아버지의 말에 반대하는 것을 상상해 본 적도 없다.
더 정확히 그녀는, 그녀의 의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B는 아버지가 정해준 남자와 결혼했고, 그는 A였다.
그녀의 머릿속에 여자의 숙명은, 가족에 대한 헌신이었다.
B는 결혼 전, 아버지를 떠받들고, 결혼 후, 남편과 그의 부모를 받들며 살았다.
그와의 사이에 두 딸이 있었으나, 그녀는 자신이 아들을 낳지 못함이 죄스러웠다.
언젠가는 꼭 아들을 낳아, 남편 집안의 대를 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해방되었다. 곧, 남과 북이 갈라지더니, 남편이 떠났다.
그녀는 기다렸다.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어느 날, 북과 남 중간 어디쯤 철조망을 치더니, 그곳을 넘어가면 모두 죽을 것이라고 했다.
남쪽에는 괴물이라도 사는 모양이다. 그녀는 생각했다.
철조망 근처에는 군인들이 지키고 섰고, 눈에 띄는 생명은 모두 쏘아 죽인다는 소문이 돌았다.
시간은 자꾸 흐르고, 남쪽의 남편에게서는 소식이 끊겼다.
B는 일생일대의 선택을 한다. 철조망을 넘어, 두 딸을 데리고 남편에게 가기로 한 것이다.
여기에서, B의 비극적 여정은 생략하기로 한다.
여담이지만, 수십 년이 흐른 후에도 그녀는, 그때 이야기가 나오면 자리를 피하곤 했다.
그럴 수 없을 때는, 등을 돌리고 앉아 조용히 눈물을 흘렸었다.
결론만 이야기하자. 그녀와 두 딸은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고, 그녀는 남편을 찾아내었다.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B와 A는 다시 만났다. 그러나,
만남은 아름답지 못했다.
A는 곧, 어떤 여인과 결혼한다. 했다.
B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4. 전쟁
A는 멋쩍었고, B는 참담했고, Y는 절망했다.
A는 방관했고, B는 침묵했으며, Y는 더욱 절망했다.
B가 A를 찾아올 것을 알았다면, Y는 그와 약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죽을 때까지, 아들과 친정에서 살았을 것이다.
Y는, 자존심도 과시욕도 강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Y의 아버지는 결혼식을 강행했다. 결과적으로, 파혼은 없었다.
파혼보다는 둘째 부인이 집안을 덜 수치스럽게 했다.
Y는 방황했고, 전쟁이 일어났다. 이미 사는 것이 전쟁인데, 이 나라에도 전쟁이 일었다.
누군가 말했다. 전쟁은 이념 갈등 때문이라고, 그것은 신념과 비슷한 것이라고.
신념? 그것은 좋은 단어가 아니었나? 그것이 왜 전쟁의 이유가 되어야 하는 걸까?
또, 누군가는 말했다. 이것은 사실, 한반도의 전쟁이 아니라고… 아니라고?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는 것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데,
우리의 전쟁이 아니라고?
그녀는 그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저 도망칠 뿐이었다.
그녀의 배 속에는 C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과 아이를 살려야 했다.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발발했고, C는 1950년 6월 29일 피난 중에 태어났다.
신은 처음부터 Y와 C에게 가혹했다.
전쟁 중에는 살아남는 것이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일을 아주 성실히 해냈다.
그들은 공산군이 지나가면, 그들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고,
UN군이 지나가면, 그들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다.
옆집 아이가 노래를 바꾸어 불렀고, 그 아비가 아이 앞에서 처형되었다.
그런, 시절이었다.
1953년 7월 27일
C가 3살이 된 지 약 한 달 후, 전쟁이 멈췄다. 끝난 것이 아니라, 잠시 쉰다고 했다.
전쟁을 쉴 수도 있는 것인가? 의아했지만,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원래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진, 견고하고 거대한 미로 같다고 하지 않는가!
뭐, 되었다. 이제, 그 이름도 낯선, '삶'이란 것에 집중해보자!
그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5. C
I에게 C는, 언제나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그의 과거는 절대적인 사랑과 믿음으로부터의 배신이었고, 현재는 전쟁이었으니, 소년은 너무나 일찍, 세상은 혼자라는 것을 배웠다. 그는 합리적인 사람이자, 합리화하는 사람으로 자랐다. 사랑스럽지만, 사람을 믿지 못하는 이 아이는, 작은 어항 속 물고기처럼, 홀로, 바다를 계획하며 스스로를 지켜냈다.
C는 B를 엄마라 부르며 자랐다. Y가 없었기 때문이다.
B는 Y의 첫째 아들도 키웠는데, 아홉이 되던 해에 돌림병으로 죽었다고 했다.
Y가 왜, 언제 집을 나갔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C가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C가 다섯 살이 되기 전이었을 것이라 추측할 뿐이다.
B는 C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두 딸 보다도 애지중지 키웠다.
B는 그녀의 아버지를 닮았을 것이다. 맛있는 것, 좋은 것은 모두 Y와 A의 아들인 C에게 주었다.
아마도 어린 두 딸은, 엄마를 빼앗아간 C를 미워했을 것이다.
B는 C를 사랑해야 했고, 그렇게 했다.
B는 C가 국민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업어서 등, 하교를 시켰고 한다.
C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어느 날, 하굣길. 예쁜 아주머니가 C에게 물었다.
"얘! 니가 C니?"
"... 네."
"내가 니 엄마야. 친엄마." 그것이 C가 기억하는, Y의 첫 모습이다.
A는 곧 집 근처에 새집을 하나 얻었고, Y와 C를 데리고 나갔다.
그녀가 집에 없었던 그 세월을 어떻게 살았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어쩌면 Y는, C가 자연스레 자신을 엄마로 받아들이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고 추측할 뿐이다.
그러나 Y는, C에게 왜 떠났었는지 이야기하지 않았고, 이해시키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또 그녀는, 미안하다는 말하는 부류의 사람도 아니었다.
그리고 C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거나, 마음에 없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C에게, Y는 가족이었으나 엄마는 될 수 없었다. 지금도 그에게 엄마는, B뿐이다.
Y에 대한 믿음이 없는 C는, 그녀가 언제고 그를 다시 버릴 것이라 믿으며 자랐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C는 이해할 수 없는 Y를 사랑할 수 없었고, Y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아이를 사랑할 수 없었다.
곧, Y는 더 이상 C의 사랑을 갈구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녀는 아이들을 더 낳았다.
그 작은 아이들은 부모의 과거를 알지 못한 채, 그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Y는 그 아이들을 통해서, 새롭고 완벽한 가정을 꿈꾸었을 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Y에게, 그녀의 첫 아들과 B, C의 존재는 견디기 힘든 치부였을 것이다.
6. B의 죽음
Y의 재등장과 동시에 C는 A의 손에 이끌려, 계속 Y와 함께 살았었다.
그러나 C의 결혼 얼마 후, 사건이 있었다. C의 부인이 'I'를 낳은 것이다.
1980년 1월 1일. 그날은 일 년 중, 가장 추운 날이었다고 했다.
Y는 산모와 갓난아이의 방에 불을 모두 빼었다. C의 부인이 아들을 낳지 못했기 때문이다.
C와 그의 부인과 핏덩이는, 부인의 친정으로 피난을 갔다.
봄이 되어 돌아온 C의 가족들은, 홀로 사는 B와 살겠다고 선언했다.
B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대청소를 했고, 곧 C의 가족들은 B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C와 Y는 더욱 멀어졌다.
C와 B가 같이 산 지 얼마 되지 않아, B가 죽었다.
B는, 뒷마당의 대추나무를 애지중지하는 여인으로, C의 하나뿐인 어머니로 죽었다.
그녀의 뒤뜰에는 대추나무 하나가 있었는데, 그녀는 그것을 무척 아꼈다.
그래서인지, 가을이 되면 언제나 가지 가득, 대추가 열리곤 했다.
A의 집은 B의 집에서 가까웠지만, A가 B와 만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다만, 가을이 되어 대추가 열리면, A는 대추를 핑계로 B를 찾았다. 대추는 제사에 쓰였다.
1984년 B가 죽고, A와 Y는 B의 집으로 이사를 했다.
Y가 그 집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A 몰래, 대추나무를 베는 것이었다.
그날 저녁 A는, 대청마루에 홀로 앉아 술을 많이도 마셨다고 했다.
B의 단 한 가지 유언은, 자신을 화장(火葬)하라.는 것이었다.
육신이 불타 재가 되면, 바람을 따라 훨훨, 자유롭게 날고 싶다. 했다.
그러나, 그녀는 흙에 묻혔다. 죽어서도 땅에 메었다. 그녀 딸들의 의견이었다.
대추나무는 A와 B에겐, 고향이었다.
A와 B는 그것을 심었고,
Y는 훗날 그것을 베었다.
C는 어릴 적, 그 나무에서 놀다 떨어져 상처가 남았고,
I는 대추 열매 알레르기를 가지고 태어났다.
한반도의 '희망'이란 것도 그랬다.
과거의 사람들은 그것을 그리워했고, 함께 심었다.
그러나 매번, 무참히 꺾이었다.
간신히 그것을 키울 수 있게 되었을 때,
이 땅의 생명은, 더 이상 그것을 믿지 않게 되었다.
7. A와 Y의 죽음
A가 치매에 걸렸을 때, Y는 A를 돌보았다.
Y는, A에게 그것만은 해주고 싶다고 했었다.
그러나 Y는, 끝까지 C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사랑도 재산도 모두 다른 자식들에게 주었다.
가능할 때는, C의 것을 가져다가 다른 자식들에게 주었다.
A가 죽고, Y는 요양병원에서 지냈다.
입버릇처럼 말하던, ‘너(C) 말고 다른 자식과 살겠다.’던, 그녀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Y는 누구에게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C에게는 더욱 그랬다.
생의 끝이 다가오면서, 혹은 스스로의 기력이 쇠함을 느끼면서, 그녀는 최악의 방법을 선택했다.
“난, 기억이 안 나."
‘참… 교활하기도, 지혜롭기도 한 문장이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I는 생각했었다. 젊음이 좋은 이유는, 그것이 사랑스런 이유는, 단지 싱그럽기 때문이 아니다.
젊음은 많은 기회를 품고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늙음에게서 승리를 쟁취한다.는 말의 뜻을, 이제야 이해 할 수 있게 되었다.
최후의 경우 젊음은, 늙음의 끝, 즉 죽음으로부터 그것을 얻어낸다. 참으로,
슬프고 공평하며 자연스러운 일이겠다.
1984년 B가 죽었다.
2001년 A가 죽었다.
2018년 Y가 죽었다.
그렇게, 그들은 휴전된 나라에서, 전쟁 속에 살았었다.
8. I
I의 눈에 그들 B, A, Y, C는 자아를 가진 4개의 꼭지점처럼 보였고, 사각형을 이루어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었다. 신의 유무와 운명론을 제외하고도, 그것은 마치 그리스의 신화처럼 누군가에게는 운명의 모습으로, 누군가에게는 재앙의 모습으로 나타났으며, '가족'이라 불리었다.
각각의 자아에는 반드시 고유의 성질이 있겠으나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점을 보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인간이 아닌, 누군가의 자식이 되고, 배우자가 되고, 부모가 되었다고 했다. 그들 중 몇은 기꺼이 가족의 운명을 받아들였고, 그들 중 몇은 준비가 되지 않은 채 그저 놓여졌다. 앞 선 이들에게 가족은 참으로 긍정이겠지만, 뒤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참으로 부담이다. 그래서 그들은, 누군가는 인간의 본능이고, 누군가는 정신 승리인 '스스로와의 타협'을 시도했을 것이다. 운명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조차, 사랑 혹은 헌신이란 단어들은 유용하다. 그러나 그런 아름다운 단어들 조차 본질을 가릴 수 없다. 그들 마음 속에 진정 사랑과 헌신을 품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허깨비일 뿐이다. 타협 다음의 시도는 '회피'이다. 고통을 회피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고, 마음떠난 주체를 붙잡아두는 것은, 떠나고자 하는 이에게도 잡고자 하는 이에게도 힘겹다.
어린시절의 I는, 가족의 구성원들은 모두 서로를 사랑하는 존재라 배웠었다. '아이에게 선생님은 신의 대리'같은 것이라 했으니, 배운 것을 굳게 믿었다. 아이의 눈에 A와 Y, 그리고 C는 서로를 사랑했다. 그래야만 했다. 어린 I는, 어른이 되었다. 그 시절의 선생님 보다도 15살이 많아졌다. 상대(가족을 포함한)를 깊이 이해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홀로' 참아야만 한다는 류의 생각들은 모두 털어버렸다.
이제 어른이 된 I는,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하지않는다. 이해를 위한 긴 노력은 끝이 났다. 진실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사람들은 그저 다르다. 진실은, 그 무엇으로도 변하지 않아서 그런 이름을 가졌을 것이며, 그 사람은, 나와 달라서 타인이란 이름을 가졌을 것이다. 마땅히 내게 사랑만을 줘야하는 사람은 없을지 모르겠다. 가족도 그렇다. 선과 악이 구분되지 못 한 체 태어난 우리는, 천사도 악마도 완벽히 될 수 없어, 인간이라 이름 붙여졌다. 다섯 살 아이에게 선생님은 신의 대리자이지만, 마흔 넘은 I에게는 그저 많은 직업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I는 관찰하고 탐구한다. 객관적 시각으로, 미움과 사랑을 배제한 체, 최대한 담담하게.
그것이, 그들과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I의 노력이겠다.
남겨진 C에게
; 자료 조사
'I'의 아버지, 그리고 그의 부모.
그들은 I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자, 동시에,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들이기도 했다.
이것은 그들의 이야기이다.
여기 B와 A, 그리고 Y와 C가 있다.
우리는 이미 그들을 잃었다. 사실, 우리가 그들을 잃기 훨씬 오래전에,
그들은 스스로를 잃었지만, 아무도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었다.
다만, I는 그들을 잃을 수 없었다. 처음부터 그녀는, 그들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I만이, 그들에 대한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
나는, 'I' 다.
1. A
I에게 A는, '완벽한 늙음'이었다. I의 세상 안에서 그는, 언제나 항상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늙음을 가지고 태어나는 이는 없다 했지만, I는 A의 젊음을 본 적이 없다. 조용히 웃는 낯으로 사람을 대하던, 키가 크고 운동과 술을 사랑했던 A는, 젠틀하고 착하고 무책임한 늙은 사람이었다.
어릴 적 A는, 중국과 가까운 한반도의 북쪽에 살았었다.
그의 어머니는 사업 수완이 좋아, 중국에 커다란 만물상을 열었고, 그는 풍족하게 자랐다.
열여덟이 되자, 그는 붉은 말을 타고 만주벌판을 달리며 어머니의 사업을 도왔고,
스물이 되기 전에 결혼해, 두 딸을 두었다.
한반도를 집어삼켰던 일본은 35년 만에 돌아갔고,
해방을 기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라가 둘로 갈라질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중국에 가까운 북쪽은 공산화되고, 미국에 우호적인 남쪽은 민주화된다.라고 했다.
그와 주변의 사람들은 세상 물정에 민감했다. 곧 거대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A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알았다.
사실, 그 이유라는 것이 이해되지는 않았다.
그 오랜동안 하나였던 이 나라를 왜 둘로 갈라놓는지, 과연 그것이, 이 나라와 백성들을 위한 것인지...
하지만, 생각할 시간이 없다. 공산당들은 곧 들이닥칠 것이고, 그들은 부자들을 싫어한다고 했다.
그들은 부자들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부자들의 목을 매단다고 했다.
살고 싶다면 지금, 도망쳐야 한다. 그는 부인에게 돌아오겠다 약속하고, 남으로 야반도주한다.
약속은, 헛되었다.
북은 북 대로, 남은 남 대로, 대표를 뽑고, 각각 위원장, 대통령이라 불렀다.
한 나라에 황제가 둘일 수 있나? 그는 대한제국을 살았던 사람이니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남과 북은 합칠 기색이 없었고, 서로를 죽일 듯 헐뜯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그는 깨달았다.
집을 떠나 남으로 건너온 순간 그는, 재산과 가족을 모두 잃은 것이다. 그는 빈털터리고, 혼자이다.
그의 울음은 허망하고 무가치했다. 할 수 있는 일에 매달려야 했다.
먹을 것이 부족한 계절이었고, 죽는 것이 예사롭던 시절이었다.
일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것이며, 생각이 깊어지면 감옥에서 죽을 것이다.
생각하지 말고, 하루하루 살아갈 궁리를 해야 했다.
그의 타고난 근면함과 어려서부터 배운 사업 수완은, 그를 돋보이게 했다.
어찌어찌 일하게 된 곳에서 그는, 사장의 눈에 띄었다.
사장에게는 분단으로 남편을 잃은 딸이 하나 있었고,
딸과 같은 이유로 가족을 잃은 A를, 사장은 눈 여겨 보았다.
얼마 후, A와 사장의 딸은 약혼한다.
2. Y
I에게 Y는, '화난 가면을 쓴 사람'이었다. I의 기억 속 할머니는, 항상 찡그린 얼굴로 화를 냈었다.
작고 하얗고 소싯적에 참으로 예뻤다던, 그리고 여전히 고왔던 할머니 Y. 그녀는 어째서인지 A, C, I에게 웃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었다. 자기 연민에 빠져, 자신의 삶 일부를 송두리째 드러내고자 했던 그녀는, 삶에 화가 난 사람이었다.
Y의 남동생에 의하면, 그녀는 부잣집 첫째 딸이었다.
주변의 사람들은 그녀를 사랑했고, 동생들은 그녀를 잘 따랐다고 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서울에서 크게 사업을 했고, 그들은 일본식 정원이 멋진 저택에서 살았다.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을 당시, 일본에서 온 고위 간부를 위해 지어진 집이라고 했다.
그 저택에서 사람들은 그녀를 '큰 애기씨'라고 불렀다.
Y는 어여쁜 소녀였다.
공부를 곧 잘하고 명랑한,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사랑했던, 햇살 같은 소녀.
그런 그녀는, 무엇이 되지 못했다.
시대의 소녀들처럼,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할 겨를없이, 결혼했다.
일제가 어린 소녀들을 위안부로 강제징용하자,
그녀의 아버지는 그들의 눈을 피해, 그녀를 저 멀리 강원도 산골로 시집 보낸 것이다.
작고 하얗고 공부를 썩 잘했다는 그 어린 소녀는,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지 못하고
그렇게 시집을 갔다.
아름다운 것을 본능적으로 사랑했던, 부유한 서울 아가씨는 산골의 생활을 견디지 못했다.
그녀는 첫아들을 낳았고, 출산 후에는 친정에 자주 머물렀다고 한다.
문득, 그녀는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이 되고 싶은 무언가는, 지금의 그녀가 아니라는 것을,
자신은, 누군가를 위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나
아무리 방황하고, 저항해도, 현실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 또한,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 이상하리만큼 갑자기, 혹은 그 시절만큼 혼란스럽게 –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갈라졌다.
친정에 다니러 왔던 Y와 아들, 그리고 강원도 북쪽의 남편은 그렇게 이별했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 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세월이 흘렀다. Y의 아버지는 성실하고 과묵한 A가 마음에 들었고, Y는 그가 싫지 않았다.
둘은, 약혼했다.
3. B
I에게 B는, 생의 '첫 기억인, 죽음'이었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그녀는, 4살 된 손녀(I) 앞에서 죽었다.
손녀에게 고구마를 간식으로 주려던 B는, 대청마루에 걸터앉으려다 쓰러졌다. 쓰러진 B를 위해, I는 울며불며 일하는 엄마에게 뛰어갔었다. 그녀는 커다랗고 무서운 얼굴로, I를 창피하리만큼 사랑했던 희미한 사람이었다.
B의 아버지는 덕망 있는 집안의 장자였다.
그는 철저히 유교적인 인물로, 실력이 출중했고, 소신에 타협이 없었다.
모두가 우러르는 그는, 딸들에게는 최악의 아버지였을 것이다.
그는 자식 중, 여자는 가르치지 않았다. 그래서 B는, 글을 몰랐다.
그 집안의 여자들은 어떠한 사회 활동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착한 딸이었고, 아버지의 말에 반대하는 것을 상상해 본 적도 없다.
더 정확히 그녀는, 그녀의 의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B는 아버지가 정해준 남자와 결혼했고, 그는 A였다.
그녀의 머릿속에 여자의 숙명은, 가족에 대한 헌신이었다.
B는 결혼 전, 아버지를 떠받들고, 결혼 후, 남편과 그의 부모를 받들며 살았다.
그와의 사이에 두 딸이 있었으나, 그녀는 자신이 아들을 낳지 못함이 죄스러웠다.
언젠가는 꼭 아들을 낳아, 남편 집안의 대를 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해방되었다. 곧, 남과 북이 갈라지더니, 남편이 떠났다.
그녀는 기다렸다.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어느 날, 북과 남 중간 어디쯤 철조망을 치더니, 그곳을 넘어가면 모두 죽을 것이라고 했다.
남쪽에는 괴물이라도 사는 모양이다. 그녀는 생각했다.
철조망 근처에는 군인들이 지키고 섰고, 눈에 띄는 생명은 모두 쏘아 죽인다는 소문이 돌았다.
시간은 자꾸 흐르고, 남쪽의 남편에게서는 소식이 끊겼다.
B는 일생일대의 선택을 한다. 철조망을 넘어, 두 딸을 데리고 남편에게 가기로 한 것이다.
여기에서, B의 비극적 여정은 생략하기로 한다.
여담이지만, 수십 년이 흐른 후에도 그녀는, 그때 이야기가 나오면 자리를 피하곤 했다.
그럴 수 없을 때는, 등을 돌리고 앉아 조용히 눈물을 흘렸었다.
결론만 이야기하자. 그녀와 두 딸은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고, 그녀는 남편을 찾아내었다.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B와 A는 다시 만났다. 그러나,
만남은 아름답지 못했다.
A는 곧, 어떤 여인과 결혼한다. 했다.
B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4. 전쟁
A는 멋쩍었고, B는 참담했고, Y는 절망했다.
A는 방관했고, B는 침묵했으며, Y는 더욱 절망했다.
B가 A를 찾아올 것을 알았다면, Y는 그와 약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죽을 때까지, 아들과 친정에서 살았을 것이다.
Y는, 자존심도 과시욕도 강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Y의 아버지는 결혼식을 강행했다. 결과적으로, 파혼은 없었다.
파혼보다는 둘째 부인이 집안을 덜 수치스럽게 했다.
Y는 방황했고, 전쟁이 일어났다. 이미 사는 것이 전쟁인데, 이 나라에도 전쟁이 일었다.
누군가 말했다. 전쟁은 이념 갈등 때문이라고, 그것은 신념과 비슷한 것이라고.
신념? 그것은 좋은 단어가 아니었나? 그것이 왜 전쟁의 이유가 되어야 하는 걸까?
또, 누군가는 말했다. 이것은 사실, 한반도의 전쟁이 아니라고… 아니라고?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는 것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데,
우리의 전쟁이 아니라고?
그녀는 그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저 도망칠 뿐이었다.
그녀의 배 속에는 C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과 아이를 살려야 했다.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발발했고, C는 1950년 6월 29일 피난 중에 태어났다.
신은 처음부터 Y와 C에게 가혹했다.
전쟁 중에는 살아남는 것이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일을 아주 성실히 해냈다.
그들은 공산군이 지나가면, 그들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고,
UN군이 지나가면, 그들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다.
옆집 아이가 노래를 바꾸어 불렀고, 그 아비가 아이 앞에서 처형되었다.
그런, 시절이었다.
1953년 7월 27일
C가 3살이 된 지 약 한 달 후, 전쟁이 멈췄다. 끝난 것이 아니라, 잠시 쉰다고 했다.
전쟁을 쉴 수도 있는 것인가? 의아했지만,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원래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진, 견고하고 거대한 미로 같다고 하지 않는가!
뭐, 되었다. 이제, 그 이름도 낯선, '삶'이란 것에 집중해보자!
그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5. C
I에게 C는, 언제나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그의 과거는 절대적인 사랑과 믿음으로부터의 배신이었고, 현재는 전쟁이었으니, 소년은 너무나 일찍, 세상은 혼자라는 것을 배웠다. 그는 합리적인 사람이자, 합리화하는 사람으로 자랐다. 사랑스럽지만, 사람을 믿지 못하는 이 아이는, 작은 어항 속 물고기처럼, 홀로, 바다를 계획하며 스스로를 지켜냈다.
C는 B를 엄마라 부르며 자랐다. Y가 없었기 때문이다.
B는 Y의 첫째 아들도 키웠는데, 아홉이 되던 해에 돌림병으로 죽었다고 했다.
Y가 왜, 언제 집을 나갔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C가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C가 다섯 살이 되기 전이었을 것이라 추측할 뿐이다.
B는 C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두 딸 보다도 애지중지 키웠다.
B는 그녀의 아버지를 닮았을 것이다. 맛있는 것, 좋은 것은 모두 Y와 A의 아들인 C에게 주었다.
아마도 어린 두 딸은, 엄마를 빼앗아간 C를 미워했을 것이다.
B는 C를 사랑해야 했고, 그렇게 했다.
B는 C가 국민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업어서 등, 하교를 시켰고 한다.
C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어느 날, 하굣길. 예쁜 아주머니가 C에게 물었다.
"얘! 니가 C니?"
"... 네."
"내가 니 엄마야. 친엄마." 그것이 C가 기억하는, Y의 첫 모습이다.
A는 곧 집 근처에 새집을 하나 얻었고, Y와 C를 데리고 나갔다.
그녀가 집에 없었던 그 세월을 어떻게 살았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어쩌면 Y는, C가 자연스레 자신을 엄마로 받아들이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고 추측할 뿐이다.
그러나 Y는, C에게 왜 떠났었는지 이야기하지 않았고, 이해시키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또 그녀는, 미안하다는 말하는 부류의 사람도 아니었다.
그리고 C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거나, 마음에 없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C에게, Y는 가족이었으나 엄마는 될 수 없었다. 지금도 그에게 엄마는, B뿐이다.
Y에 대한 믿음이 없는 C는, 그녀가 언제고 그를 다시 버릴 것이라 믿으며 자랐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C는 이해할 수 없는 Y를 사랑할 수 없었고, Y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아이를 사랑할 수 없었다.
곧, Y는 더 이상 C의 사랑을 갈구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녀는 아이들을 더 낳았다.
그 작은 아이들은 부모의 과거를 알지 못한 채, 그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Y는 그 아이들을 통해서, 새롭고 완벽한 가정을 꿈꾸었을 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Y에게, 그녀의 첫 아들과 B, C의 존재는 견디기 힘든 치부였을 것이다.
6. B의 죽음
Y의 재등장과 동시에 C는 A의 손에 이끌려, 계속 Y와 함께 살았었다.
그러나 C의 결혼 얼마 후, 사건이 있었다. C의 부인이 'I'를 낳은 것이다.
1980년 1월 1일. 그날은 일 년 중, 가장 추운 날이었다고 했다.
Y는 산모와 갓난아이의 방에 불을 모두 빼었다. C의 부인이 아들을 낳지 못했기 때문이다.
C와 그의 부인과 핏덩이는, 부인의 친정으로 피난을 갔다.
봄이 되어 돌아온 C의 가족들은, 홀로 사는 B와 살겠다고 선언했다.
B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대청소를 했고, 곧 C의 가족들은 B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C와 Y는 더욱 멀어졌다.
C와 B가 같이 산 지 얼마 되지 않아, B가 죽었다.
B는, 뒷마당의 대추나무를 애지중지하는 여인으로, C의 하나뿐인 어머니로 죽었다.
그녀의 뒤뜰에는 대추나무 하나가 있었는데, 그녀는 그것을 무척 아꼈다.
그래서인지, 가을이 되면 언제나 가지 가득, 대추가 열리곤 했다.
A의 집은 B의 집에서 가까웠지만, A가 B와 만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다만, 가을이 되어 대추가 열리면, A는 대추를 핑계로 B를 찾았다. 대추는 제사에 쓰였다.
1984년 B가 죽고, A와 Y는 B의 집으로 이사를 했다.
Y가 그 집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A 몰래, 대추나무를 베는 것이었다.
그날 저녁 A는, 대청마루에 홀로 앉아 술을 많이도 마셨다고 했다.
B의 단 한 가지 유언은, 자신을 화장(火葬)하라.는 것이었다.
육신이 불타 재가 되면, 바람을 따라 훨훨, 자유롭게 날고 싶다. 했다.
그러나, 그녀는 흙에 묻혔다. 죽어서도 땅에 메었다. 그녀 딸들의 의견이었다.
대추나무는 A와 B에겐, 고향이었다.
A와 B는 그것을 심었고,
Y는 훗날 그것을 베었다.
C는 어릴 적, 그 나무에서 놀다 떨어져 상처가 남았고,
I는 대추 열매 알레르기를 가지고 태어났다.
한반도의 '희망'이란 것도 그랬다.
과거의 사람들은 그것을 그리워했고, 함께 심었다.
그러나 매번, 무참히 꺾이었다.
간신히 그것을 키울 수 있게 되었을 때,
이 땅의 생명은, 더 이상 그것을 믿지 않게 되었다.
7. A와 Y의 죽음
A가 치매에 걸렸을 때, Y는 A를 돌보았다.
Y는, A에게 그것만은 해주고 싶다고 했었다.
그러나 Y는, 끝까지 C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사랑도 재산도 모두 다른 자식들에게 주었다.
가능할 때는, C의 것을 가져다가 다른 자식들에게 주었다.
A가 죽고, Y는 요양병원에서 지냈다.
입버릇처럼 말하던, ‘너(C) 말고 다른 자식과 살겠다.’던, 그녀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Y는 누구에게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C에게는 더욱 그랬다.
생의 끝이 다가오면서, 혹은 스스로의 기력이 쇠함을 느끼면서, 그녀는 최악의 방법을 선택했다.
“난, 기억이 안 나."
‘참… 교활하기도, 지혜롭기도 한 문장이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I는 생각했었다. 젊음이 좋은 이유는, 그것이 사랑스런 이유는, 단지 싱그럽기 때문이 아니다.
젊음은 많은 기회를 품고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늙음에게서 승리를 쟁취한다.는 말의 뜻을, 이제야 이해 할 수 있게 되었다.
최후의 경우 젊음은, 늙음의 끝, 즉 죽음으로부터 그것을 얻어낸다. 참으로,
슬프고 공평하며 자연스러운 일이겠다.
1984년 B가 죽었다.
2001년 A가 죽었다.
2018년 Y가 죽었다.
그렇게, 그들은 휴전된 나라에서, 전쟁 속에 살았었다.
8. I
I의 눈에 그들 B, A, Y, C는 자아를 가진 4개의 꼭지점처럼 보였고, 사각형을 이루어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었다. 신의 유무와 운명론을 제외하고도, 그것은 마치 그리스의 신화처럼 누군가에게는 운명의 모습으로, 누군가에게는 재앙의 모습으로 나타났으며, '가족'이라 불리었다.
각각의 자아에는 반드시 고유의 성질이 있겠으나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점을 보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인간이 아닌, 누군가의 자식이 되고, 배우자가 되고, 부모가 되었다고 했다. 그들 중 몇은 기꺼이 가족의 운명을 받아들였고, 그들 중 몇은 준비가 되지 않은 채 그저 놓여졌다. 앞 선 이들에게 가족은 참으로 긍정이겠지만, 뒤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참으로 부담이다. 그래서 그들은, 누군가는 인간의 본능이고, 누군가는 정신 승리인 '스스로와의 타협'을 시도했을 것이다. 운명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조차, 사랑 혹은 헌신이란 단어들은 유용하다. 그러나 그런 아름다운 단어들 조차 본질을 가릴 수 없다. 그들 마음 속에 진정 사랑과 헌신을 품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허깨비일 뿐이다. 타협 다음의 시도는 '회피'이다. 고통을 회피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고, 마음떠난 주체를 붙잡아두는 것은, 떠나고자 하는 이에게도 잡고자 하는 이에게도 힘겹다.
어린시절의 I는, 가족의 구성원들은 모두 서로를 사랑하는 존재라 배웠었다. '아이에게 선생님은 신의 대리'같은 것이라 했으니, 배운 것을 굳게 믿었다. 아이의 눈에 A와 Y, 그리고 C는 서로를 사랑했다. 그래야만 했다. 어린 I는, 어른이 되었다. 그 시절의 선생님 보다도 15살이 많아졌다. 상대(가족을 포함한)를 깊이 이해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홀로' 참아야만 한다는 류의 생각들은 모두 털어버렸다.
이제 어른이 된 I는,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하지않는다. 이해를 위한 긴 노력은 끝이 났다. 진실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사람들은 그저 다르다. 진실은, 그 무엇으로도 변하지 않아서 그런 이름을 가졌을 것이며, 그 사람은, 나와 달라서 타인이란 이름을 가졌을 것이다. 마땅히 내게 사랑만을 줘야하는 사람은 없을지 모르겠다. 가족도 그렇다. 선과 악이 구분되지 못 한 체 태어난 우리는, 천사도 악마도 완벽히 될 수 없어, 인간이라 이름 붙여졌다. 다섯 살 아이에게 선생님은 신의 대리자이지만, 마흔 넘은 I에게는 그저 많은 직업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I는 관찰하고 탐구한다. 객관적 시각으로, 미움과 사랑을 배제한 체, 최대한 담담하게.
그것이, 그들과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I의 노력이겠다.
남겨진 C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