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인간 - 그의 섬, 2018
달팽이.
그것은 아마도 '섬'을 짊어지고 사는 생명체이다.
그녀는 다시 태어난다면, 아마 달팽이로 태어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금도 그녀는 그것과 다르지 않으니 ...
1.
그녀의 친구 얼굴에 웃음이 만면하다.
손에는 차가운 음료수를 담아주는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가 들려있다.
"선물 이야."
안에는 상추가 한 장 놓였다.
"... ?"
자세히 보니, 달팽이 한 마리가 죽은 듯 웅크렸다.
친구는 그것을 내게 줄 생각에 기뻐, 이곳까지 뛰어왔다고 한다. 친구가 기쁜 만큼, 달팽이는 공포였겠군! 측은하다.
그녀는 생명에 예민하다. 정확히는 생명체를 집 안에 들이는 것에 무척이나 민감하다.
그녀가 어려서, 그녀의 이모는 책임감을 길러주겠다며, 여러 종류의 동식물들을 사다 주곤 했다. 거북이, 물고기, 새, 햄스터, 선인장, 이름도 잊은 작고 귀여운 식물들... 뭐 그런 것들. 그리고, 그 애완용 생물들은 모두 몇 달 안에 죽어 나갔었다.
"어때? 신기하지? 그냥 상추만 주면 된데. 이틀에 한 번씩 집 청소해주고.
아! 방생은 절대 안된데, 외래종이라 생태계 파괴한다 더라고.
못 키우겠으면, 그냥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리면 된다더라. 식용 이라서.
키우기 쉽지?"
"..."
그녀와 친구는 한 달 뒤에 있을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기위해 만났다.
둘은 같이 제주에 갈 요량이다. 제주 여행을 한 달 전부터 계획하는 사람이 있기는 한 건가?! 그녀는 그 섬에 익숙하다.
그리고 그녀는 그 곳에 갈 때, 계획하지 않는다.
친구는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한 번, 대학 졸업여행 때 한 번 가본적이 있다고 했다.
15년도 더 된 것 같다며, 같은 돈이면 조금 더 보태서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 좋다고 했었다.
그런 친구에게서, 그제 갑자기 전화가 왔다.
그녀와 제주에 가겠다고, 다음달에 시간이 되냐고,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그래."
마침, 이제 떠나야겠다고 생각하던 터라, 선뜻 응했다.
보통 섬에는 혼자 가지만, 둘도 괜찮겠지? 하며.
어제 하루 종일 여행 일정을 짰다며, 한 시간 동안이나 계획들을 늘어놓다가, 인터넷으로 비행기표와 숙소를 예약한 친구는,
"그럼, 이제 떠나기만하면 되는 건가?!"
신이 났다. 그리고 30분을 더 머물었고, 떠났다.
달팽이와 나, 단 둘.
흠... 그냥 카페에 놓고 갈까? 알바생에게 버려달라고 할까?
생각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그것이 지금 그녀의 집 식탁 위에 올려져 있다.
그녀는 그것이 탐탁치 않다.
생명을 키운다는 것에 대한 중압감이 첫 번째,
딱딱한 껍질과 징그러운 근육으로 이루어진 존재에 대한 거부감이 두 번째이다.
그녀는 한참 그것을 노려보다, 결국 마트에서 상추 한 다발을 사 들고 왔다.
2.
그녀는 요즘, 인도계 미국 의사가 썼다는 '유전자의 역사'라는 책을 읽는다.
유전자를 바라보는 인간의 과거와 현재를, 마치 역사책처럼 풀어가는 것이 신기하기도 재밌기도 했다.
학교 다닐 때, 멘델이니 초파리니 하는 것들은 왜 배우나 했다.
읽다 보니 이유가 있더라.
그러다 무심코 달팽이와 눈이 마주쳤다.
물론, 녀석의 촉수에는 시각이 거의 없다고 하니, 나와 눈이 마주칠 확률은 전혀 없겠지만,
문득, 저 녀석이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보세요? 응. 아빠. 엄마는? 아빠가 힘들겠네. 주말에는 내가 병원에 같이 있을 테니까, 아빠는 집에 가서 좀 쉬어요. 응. 들어가요."
자신과 주변인을 책임져야한다는 중압감을,
항시 몸과 마음 숨을 곳을 짊어지고 다니는 것으로 회피하는 듯 보이지만,
"여보세요? 네. 안녕하세요. 네? 아이가요? 죄송해요. 오늘이 어린이 집 소풍인 걸 깜빡 했네요. 제가 지금 가져 갈게요. 네. 곧 뵈요."
그것이 있어,
다시 현실로 돌아 올 수 있는 힘을 충전하는 듯도 보였다.
"응. 오빠. 뭐? 생신? 아 ... 그래. 고생은 뭘. 오빠가 고생이지. 응. 준비하면되지 뭘. 음 ... 그럼 오늘 늦겠네? 그래. 걱정 마. 수고해."
현실에 대한 거부감과 그것에 대한 책임감을 동시에 지닐 수 있게 진화하여 살아남은 듯 했다.
"아! 죄송해요. 전화하셨네요? 통화 중이었어요. 아 ... 그럼 설치는 목,금하고, 전시 오프닝은 토요일에 하면 되겠네요. 네. 저도 4시 좋아요. 수고 많으시네요. 감사해요. 도착하면 연락드릴게요."
그렇다. 그것은 나와 닮았다.
3.
그녀는 책을 읽다 잠이 들었다.
닥터 D라는 사람이 이야기한다. 그는 20년간 달팽이 인간을 연구해왔다고 했다.
"<달팽이 인간>들은 스스로를 '우리'라 부릅니다.
'우리'의 껍데기는 두 가지의 상반된 용도를 갖지요.
그 하나는, 현실을 회피하는 것이고, 그 둘은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우리'라는 인류는 인간의 육체가 변이와 유전의 지배하에 긴 세월 동안 살아남는 것을 목격했어요.
'우리'는 그것을 참고해서 살아남은 것이죠.
'그들'의 진화 방법은 이렇습니다. DNA에 명령하고, RNA가 알려주고, 단백질이 형상화 하죠.
어느 것을 남기고, 어느 것을 소멸시킬지, 자연이 자연적으로 선택합니다.
'우리'의 다른 점은, 진화는 육체가 아닌, 인간의 나약함에 새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닌 인간들을 통해 발현되는 것이죠.
남겨지는 것도, 소멸되는 것도 모두 두려우니, 어느 것의 선택도 받지 못하게 숨어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스스로 껍데기를 만드는 거예요.
가시적인 껍데기는 '자연스레' 자연의 선택을 받아야만 하잖아요? 그러니 마음 깊숙한 곳에 그것을 만듭니다.
뭐랄까... 아주 조용하고 영악한 인류인 것이죠.
그곳에서 현실을 회피하고, 동시에 현실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자신만의 강함을 찾지못했으니, 대신 '우리'는 숨는 것을 무기 삼습니다."
4.
이제 그녀는 달팽이와 그럭저럭 하지만 서먹하게 지낼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녀에게서 전화가 온다.
"응, 도희야. 우리 내일 출발 맞지. 왜? 무슨 일 있어? 응. 응. 그래? 잘 됐다. 아 ... 어쩔 수 없지. 아냐. 난 원래 혼자도 잘 다니는데 뭘. 괜찮아. 미루긴. 난 그냥 내일 갈게. 이제 좀 떠날 때가 됐어. 응. 그렇지? 올해만 네 번째 맞네. 그러게. 그럼 다녀와서 보자. 축하해. 응."
친구와 통화를 끝낸 그녀는, 달팽이 집을 청소해주고, 간단히 짐을 싸며, 핸드폰 메시지를 확인했다.
[ 작가님! 안녕하세요!!!
내일 제주 오시죠?
태풍이 오는지, 비가 엄청 많이 내려요.
비행기 결항 될지도 모르겠어요.
갤러리도 물 샐까 걱정이네요.
조심히 오세요~~~~~~~ ]
그녀는 섬에 간다. 섬이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육지가 아닌 곳이 필요할 것일지도... 몸이 가는 섬은 그녀의 육신을 쉬게 하고,
마음이 가는 섬은 그녀가 다시 현실과 마주 할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그녀는 섬을 찾는다. 그녀는 섬을 짊어진다. 텅 빈 화려 속에 은둔한다.
5.
그리고, 그녀가 돌아왔을 때, 식탁 위의 달팽이는 죽어있었다.
가족들은 그것이 죽었는지 알지 못 했다.
그녀는 차마 그것을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릴 수 없어, 아파트 화단에 묻어주었다.
'다음 생에는, 주인을 두지 마. 미안하다.'
G와 H에게.
달팽이.
그것은 아마도 '섬'을 짊어지고 사는 생명체이다.
그녀는 다시 태어난다면, 아마 달팽이로 태어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금도 그녀는 그것과 다르지 않으니 ...
1.
그녀의 친구 얼굴에 웃음이 만면하다.
손에는 차가운 음료수를 담아주는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가 들려있다.
"선물 이야."
안에는 상추가 한 장 놓였다.
"... ?"
자세히 보니, 달팽이 한 마리가 죽은 듯 웅크렸다.
친구는 그것을 내게 줄 생각에 기뻐, 이곳까지 뛰어왔다고 한다. 친구가 기쁜 만큼, 달팽이는 공포였겠군! 측은하다.
그녀는 생명에 예민하다. 정확히는 생명체를 집 안에 들이는 것에 무척이나 민감하다.
그녀가 어려서, 그녀의 이모는 책임감을 길러주겠다며, 여러 종류의 동식물들을 사다 주곤 했다. 거북이, 물고기, 새, 햄스터, 선인장, 이름도 잊은 작고 귀여운 식물들... 뭐 그런 것들. 그리고, 그 애완용 생물들은 모두 몇 달 안에 죽어 나갔었다.
"어때? 신기하지? 그냥 상추만 주면 된데. 이틀에 한 번씩 집 청소해주고.
아! 방생은 절대 안된데, 외래종이라 생태계 파괴한다 더라고.
못 키우겠으면, 그냥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리면 된다더라. 식용 이라서.
키우기 쉽지?"
"..."
그녀와 친구는 한 달 뒤에 있을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기위해 만났다.
둘은 같이 제주에 갈 요량이다. 제주 여행을 한 달 전부터 계획하는 사람이 있기는 한 건가?! 그녀는 그 섬에 익숙하다.
그리고 그녀는 그 곳에 갈 때, 계획하지 않는다.
친구는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한 번, 대학 졸업여행 때 한 번 가본적이 있다고 했다.
15년도 더 된 것 같다며, 같은 돈이면 조금 더 보태서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 좋다고 했었다.
그런 친구에게서, 그제 갑자기 전화가 왔다.
그녀와 제주에 가겠다고, 다음달에 시간이 되냐고,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그래."
마침, 이제 떠나야겠다고 생각하던 터라, 선뜻 응했다.
보통 섬에는 혼자 가지만, 둘도 괜찮겠지? 하며.
어제 하루 종일 여행 일정을 짰다며, 한 시간 동안이나 계획들을 늘어놓다가, 인터넷으로 비행기표와 숙소를 예약한 친구는,
"그럼, 이제 떠나기만하면 되는 건가?!"
신이 났다. 그리고 30분을 더 머물었고, 떠났다.
달팽이와 나, 단 둘.
흠... 그냥 카페에 놓고 갈까? 알바생에게 버려달라고 할까?
생각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그것이 지금 그녀의 집 식탁 위에 올려져 있다.
그녀는 그것이 탐탁치 않다.
생명을 키운다는 것에 대한 중압감이 첫 번째,
딱딱한 껍질과 징그러운 근육으로 이루어진 존재에 대한 거부감이 두 번째이다.
그녀는 한참 그것을 노려보다, 결국 마트에서 상추 한 다발을 사 들고 왔다.
2.
그녀는 요즘, 인도계 미국 의사가 썼다는 '유전자의 역사'라는 책을 읽는다.
유전자를 바라보는 인간의 과거와 현재를, 마치 역사책처럼 풀어가는 것이 신기하기도 재밌기도 했다.
학교 다닐 때, 멘델이니 초파리니 하는 것들은 왜 배우나 했다.
읽다 보니 이유가 있더라.
그러다 무심코 달팽이와 눈이 마주쳤다.
물론, 녀석의 촉수에는 시각이 거의 없다고 하니, 나와 눈이 마주칠 확률은 전혀 없겠지만,
문득, 저 녀석이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보세요? 응. 아빠. 엄마는? 아빠가 힘들겠네. 주말에는 내가 병원에 같이 있을 테니까, 아빠는 집에 가서 좀 쉬어요. 응. 들어가요."
자신과 주변인을 책임져야한다는 중압감을,
항시 몸과 마음 숨을 곳을 짊어지고 다니는 것으로 회피하는 듯 보이지만,
"여보세요? 네. 안녕하세요. 네? 아이가요? 죄송해요. 오늘이 어린이 집 소풍인 걸 깜빡 했네요. 제가 지금 가져 갈게요. 네. 곧 뵈요."
그것이 있어,
다시 현실로 돌아 올 수 있는 힘을 충전하는 듯도 보였다.
"응. 오빠. 뭐? 생신? 아 ... 그래. 고생은 뭘. 오빠가 고생이지. 응. 준비하면되지 뭘. 음 ... 그럼 오늘 늦겠네? 그래. 걱정 마. 수고해."
현실에 대한 거부감과 그것에 대한 책임감을 동시에 지닐 수 있게 진화하여 살아남은 듯 했다.
"아! 죄송해요. 전화하셨네요? 통화 중이었어요. 아 ... 그럼 설치는 목,금하고, 전시 오프닝은 토요일에 하면 되겠네요. 네. 저도 4시 좋아요. 수고 많으시네요. 감사해요. 도착하면 연락드릴게요."
그렇다. 그것은 나와 닮았다.
3.
그녀는 책을 읽다 잠이 들었다.
닥터 D라는 사람이 이야기한다. 그는 20년간 달팽이 인간을 연구해왔다고 했다.
"<달팽이 인간>들은 스스로를 '우리'라 부릅니다.
'우리'의 껍데기는 두 가지의 상반된 용도를 갖지요.
그 하나는, 현실을 회피하는 것이고, 그 둘은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우리'라는 인류는 인간의 육체가 변이와 유전의 지배하에 긴 세월 동안 살아남는 것을 목격했어요.
'우리'는 그것을 참고해서 살아남은 것이죠.
'그들'의 진화 방법은 이렇습니다. DNA에 명령하고, RNA가 알려주고, 단백질이 형상화 하죠.
어느 것을 남기고, 어느 것을 소멸시킬지, 자연이 자연적으로 선택합니다.
'우리'의 다른 점은, 진화는 육체가 아닌, 인간의 나약함에 새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닌 인간들을 통해 발현되는 것이죠.
남겨지는 것도, 소멸되는 것도 모두 두려우니, 어느 것의 선택도 받지 못하게 숨어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스스로 껍데기를 만드는 거예요.
가시적인 껍데기는 '자연스레' 자연의 선택을 받아야만 하잖아요? 그러니 마음 깊숙한 곳에 그것을 만듭니다.
뭐랄까... 아주 조용하고 영악한 인류인 것이죠.
그곳에서 현실을 회피하고, 동시에 현실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자신만의 강함을 찾지못했으니, 대신 '우리'는 숨는 것을 무기 삼습니다."
4.
이제 그녀는 달팽이와 그럭저럭 하지만 서먹하게 지낼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녀에게서 전화가 온다.
"응, 도희야. 우리 내일 출발 맞지. 왜? 무슨 일 있어? 응. 응. 그래? 잘 됐다. 아 ... 어쩔 수 없지. 아냐. 난 원래 혼자도 잘 다니는데 뭘. 괜찮아. 미루긴. 난 그냥 내일 갈게. 이제 좀 떠날 때가 됐어. 응. 그렇지? 올해만 네 번째 맞네. 그러게. 그럼 다녀와서 보자. 축하해. 응."
친구와 통화를 끝낸 그녀는, 달팽이 집을 청소해주고, 간단히 짐을 싸며, 핸드폰 메시지를 확인했다.
[ 작가님! 안녕하세요!!!
내일 제주 오시죠?
태풍이 오는지, 비가 엄청 많이 내려요.
비행기 결항 될지도 모르겠어요.
갤러리도 물 샐까 걱정이네요.
조심히 오세요~~~~~~~ ]
그녀는 섬에 간다. 섬이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육지가 아닌 곳이 필요할 것일지도... 몸이 가는 섬은 그녀의 육신을 쉬게 하고,
마음이 가는 섬은 그녀가 다시 현실과 마주 할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그녀는 섬을 찾는다. 그녀는 섬을 짊어진다. 텅 빈 화려 속에 은둔한다.
5.
그리고, 그녀가 돌아왔을 때, 식탁 위의 달팽이는 죽어있었다.
가족들은 그것이 죽었는지 알지 못 했다.
그녀는 차마 그것을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릴 수 없어, 아파트 화단에 묻어주었다.
'다음 생에는, 주인을 두지 마. 미안하다.'
G와 H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