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있음과 없음)과 순환(연결과 단절)에 대한 연구
작가가 생각하는 1)틈은 있음과 없음 2)순환은 연결과 단절,에서 야기한다. 또 동시에 그것들의 원인이 된다. 이것들은 서로 상호작용하며 나와 세상에 작동한다.
1) 틈
모든 질서 안에는 틈이 존재한다.
질서 안의 틈은 균열의 태동이며 동시에 숨 쉴 구멍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막으려 애쓰고 누군가는 그것을 만들려 애쓴다. 아이러니하게도 질서는 틈에서 태어나고 그것을 품고 자란다. 질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틈은 생길 수 없다. 그러니 질서와 틈은 있음과 없음, 없음과 있음, 그 전복의 연속이다. 틈 사이 한 숨 내쉬면, 전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으로의 한 걸음. 이전의 질서로는 회귀할 수 없다. 그렇게 질서는 틈을 만들고; 틈은 다시 새로운 질서를 만들며 순환한다.
작가에게 뜨개는 이러한 사상과 현상을 가시적으로 나타내기에 더 없이 좋은 특성을 지녔다. 실이 있음이라는 고리를 만들면, 그 고리 안에는 없음이라는 공간이 생긴다. 있음과 없음이 함께 나아간다. 두 개의 모순된 이야기가 동시에 창조되어야만, 뜨개의 존재가 가능해진다.
2) 순환
순환은 처음과 끝을 묶기도 하고, 이것과 저것을 엮기도 한다. 처음과 끝은 원래 하나의 존재이고, 이것과 저것은 각각 고유의 것(이)들에게서 기인한다. 그러니 묶이고 엮이는 순환의 범위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다양하다. 예를 들면, 사람, 사물, 사상, 시간… 등
순환은, 빙빙 돈다는 뜻의 순循과 고리라는 뜻의 환環이 합쳐진 단어이다. 그러니까 어떤 고리를 빙빙 돈다는 뜻. 작가가 이해한 순환의 고리는 가시적인 것 비가시적인 것들을 모두 포함한다.
뜨개를 이루는 털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실타래에서 시작된다. 그 고치를 풀면 그 안에 무엇이 웅크린 것이 아니라, 그 타래를 풀며 직조한 무엇이 창조물이 된다.
삶이 그래 보인다. 그 끝에 대단한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그 자체가 무엇인. 이 타래의 끝과 저 타래의 끝을 엮어 수 백 수 천의 고리를 만들며, 작가는 스스로가 정의한 순환의 정의를 미술과 묶는다.
1) 틈
모든 질서 안에는 틈이 존재한다.
질서 안의 틈은 균열의 태동이며 동시에 숨 쉴 구멍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막으려 애쓰고 누군가는 그것을 만들려 애쓴다. 아이러니하게도 질서는 틈에서 태어나고 그것을 품고 자란다. 질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틈은 생길 수 없다. 그러니 질서와 틈은 있음과 없음, 없음과 있음, 그 전복의 연속이다. 틈 사이 한 숨 내쉬면, 전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으로의 한 걸음. 이전의 질서로는 회귀할 수 없다. 그렇게 질서는 틈을 만들고; 틈은 다시 새로운 질서를 만들며 순환한다.
작가에게 뜨개는 이러한 사상과 현상을 가시적으로 나타내기에 더 없이 좋은 특성을 지녔다. 실이 있음이라는 고리를 만들면, 그 고리 안에는 없음이라는 공간이 생긴다. 있음과 없음이 함께 나아간다. 두 개의 모순된 이야기가 동시에 창조되어야만, 뜨개의 존재가 가능해진다.
2) 순환
순환은 처음과 끝을 묶기도 하고, 이것과 저것을 엮기도 한다. 처음과 끝은 원래 하나의 존재이고, 이것과 저것은 각각 고유의 것(이)들에게서 기인한다. 그러니 묶이고 엮이는 순환의 범위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다양하다. 예를 들면, 사람, 사물, 사상, 시간… 등
순환은, 빙빙 돈다는 뜻의 순循과 고리라는 뜻의 환環이 합쳐진 단어이다. 그러니까 어떤 고리를 빙빙 돈다는 뜻. 작가가 이해한 순환의 고리는 가시적인 것 비가시적인 것들을 모두 포함한다.
뜨개를 이루는 털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실타래에서 시작된다. 그 고치를 풀면 그 안에 무엇이 웅크린 것이 아니라, 그 타래를 풀며 직조한 무엇이 창조물이 된다.
삶이 그래 보인다. 그 끝에 대단한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그 자체가 무엇인. 이 타래의 끝과 저 타래의 끝을 엮어 수 백 수 천의 고리를 만들며, 작가는 스스로가 정의한 순환의 정의를 미술과 묶는다.
돌이켜보면, 뜨개 작업의 시작은 작가의 어머니. 뜨개는 그녀를 통해 불쑥 내 삶으로 들어왔다. 이 실용적이고도 아름다운 시간과 노력의 산물은, 어린 내겐 다소 촌스럽고 꽤나 간지러운 귀찮은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어린 시절 한동안 나의 어머니는 매일 따스한 밥을 짓듯, 그렇게 내게 뜨개 옷을 지어 입혔다. 그러면 나는 그것이 따숩고 부끄러웠다. 뜨개와 나의 오랜 애증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