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 ]
나는, 끝을 알 수 없이 거대한 세상이 만들어낸 작은 틈 같은 것.이라 생각한 적 있다.
틈. 그러니까 벌어져 사이가 난 자리.
보이지 않는 미미한 균열, 흔히 결점이라 여기는 그것.
삶이라 불리는 인간의 행보는 -얼마쯤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는 행위일테니,
스스로를 증명하자는 마음으로 그 틈을 연구하였다.
틈 = 나 자신 =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는 자 = 연구와 작품
질서, 그 안의 틈이 야기한 붕괴, 그 무너짐이 가져온 새로운 질서, 그리고 이것들의 순환.
거대한 세상 속에서 작은 흠과 균열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
[ 작가의 세계관 Artist’s Worldview O.T.C. ]
전시는 작가의 세계관인 질서O 틈T 순환C 에서 시작한다.(1)질서는 기존의 구조를 (2)틈은 그 안에 벌어진 사이 즉, 있음과 없음을 (3)순환은 이것들의 연결과 단절을 의미한다. 또 동시에 그것들의 원인이 된다. OTC는 서로 상호작용하며 나와 세상에 작동한다.
(1) 질서
작은 알갱이들은 모여 세상을 이룬다. 단순한 모양과 크기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특성도 만든다. 의식없는 작은 알갱이들이 사물을 만들고, 생각하고 느끼는 생명체를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생명들이 사회와 규칙을 만든다. 돌연히 변이하고 개체와 단체에 적용된다. 그 안에 숨기지 않았으나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분명한 질서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존재물들(인간을 포함한 모든 유기체와 무기체)을 상호작용하게 하는 질서의 특징은 무엇일까.
-질서는 약속이다. 물질과 정서를 움직이게 한다. 산발적으로 보이지만,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인다. 가까이 보면 혼란스럽지만, 떨어져 보면 약속이다.
-약속은 사이를 만든다. 사이는 서로 맺은 관계를 뜻하기도 하고, 한 곳에서 다른 곳까지의 공간이나 시간을 뜻하기도 한다. 질서 안의 틈을 이야기한다.
-틈에는 거리가 있다. 거리는 당기는 힘과 밀어내는 힘의 균형이다. 물건 사이의 거리는 우주 안의 행성들, 생물 안의 원자들 처럼, 끊임없이 움직이며 유지되는 거리이다. 사람 사이의 거리는 서로의 차이를 만들기도 하지만,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타인 뿐만아니라 자신 안에서도 사이가 생기고 갈등한다. 즉, 질서 안 갈등은 필연이다.
작가가 생각하는 세상의 질서, 그 가장 기본 원칙은 <높고 낮음, 흐름, 깊고 얕음>이다. 이것은 물건의 물리적 성질과 인간의 정서적 특성을 포함한다. 크고 작은 모든 약속들이 상호작용하며 세상을 이루고 있다. 결국 <높고 낮음, 흐름, 깊고 얕음>은 과정이다. 완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과 인간을 휘감은 우주 안에서, 질서는 과정을 가시적으로 내보인다. 결과는 없다. 조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우리는 세상이라 부른다. 물질의 세계에 끝이 없듯(끊임없이 다른 것으로 재탄생하니까) 사람도 그렇다. 완성된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이다. 각자의 가치관을 만들고 그것에 따라 움직인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높으려, 누군가는 자유로이 흐르려, 누군가는 한없이 깊으려, 평생을 바친다. <높고 낮음, 흐름, 깊고 얕음>으로 시작하는 물리적 세상과, 인간과, 인간이 만든 사회의 원리가 달라 보이지 않는다. 물리적 성질과 인간의 특성, 그들의 질서와 갈등, 그리고 조화…
한 캔버스에 오일과 아크릴을 함께 사용한다. 느리게 마르는 오일과 빠르게 마르는 아크릴이 한 화면에서 서로에게 관여하고 반응한다. 서로 다른 두 성질이 갈등하고 반발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각자 굳어져, 자연스러운 틈(크렉)을 창조하고, 결국에는 하나의 작품으로 귀결되는 서사를 내보인다.
(2) 틈
모든 질서 안에는 틈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틈은 사유의 구실이 된다.
언뜻 반대되어 보이는 질서와 틈은 사실 서로 떼어낼 수 없다. 질서 안의 틈은 균열의 태동이며 동시에 숨 쉴 구멍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막으려 애 쓰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질서는 틈에서 태어나고 그것을 품고 자란다. 질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틈은 생길 수 없다. 그러니 질서와 틈은 있음과 없음, 없음과 있음, 그 전복의 연속이다. 틈 사이 한 숨 내쉬면, 전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으로의 한 걸음. 그렇게 질서는 틈을 만들고; 틈은 다시 새로운 질서를 만들며 순환한다.
작가에게 뜨개는, 작가의 세계관인 <OTC: 질서 틈 순환>을 직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재료이다. 두 개의 대바늘을 통해 직조되는 질서는 틈이 필연적이다. 틈 없는 뜨개는 불가능하다. 실로 만들어진 고리들은 서로 연결되며 이어지는데, 실의 색이 바뀔때 마다 단절되었다가 연결되기(기존의 실을 끊고 다른 색의 실로 묶어 다시 연결)를 반복한다. 실이 있음이라는 고리를 만들면, 그 고리 안에는 없음이라는 공간이 생긴다. 있음과 없음이 함께 나아간다. 두 개의 모순된 이야기가 동시에 창조되어야만, 뜨개의 존재가 가능해진다.
(3) 순환
순환은 처음과 끝을 묶기도, 이것과 저것을 엮기도 한다.
처음과 끝은 원래 하나의 존재이고, 이것과 저것은 각각 고유의 것(이)들에게서 기인한다. 그러니 묶이고 엮이는 순환의 범위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다양하다. 순환은, 빙빙 돈다는 뜻의 순循과 고리라는 뜻의 환環이 합쳐진 단어이다. 작가가 이해한 순환의 고리는 가시적 비가시적인 것들을 두루 아우른다. 순환의 범주에는 사람 사물 뿐만아니라 사상 상상 등도 포함된다는 뜻이다.
뜨개를 이루는 털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실타래에서 시작된다. 그 고치를 풀면 그 안에 무엇이 웅크린 것이 아니라, 그 타래를 풀며 직조한 무엇이 창조물이 된다. 삶이 그래 보인다. 그 끝에 대단한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그 자체가 무엇인. 이 타래의 끝과 저 타래의 끝을 엮어 수 백 수 천의 고리를 만들며, 작가는 스스로가 정의한 순환의 정의를 미술과 묶는다.
조 우
틈 (있음과 없음) + 순환 (연결과 단절) + 질서 (높고 낮음 흐름 깊고 얕음 = 물질의 질서와 인간의 본성)
조우 Encounter 우연히 서로 만남_작가가 뜬 뜨개 + 캔버스 위에 오일, 아크릴, 제소_가변설치_2025
+ 작가에게 글 = 물음이다.
작품하기 전, 글을 쓴다. 메모 일기 시 에세이 소설 극본 등 형태도 다양한다. 그것은 미술의 좋은 재료가 된다. 언어와 미술의 감각이 보이지 않는 틈 그 너머에 대한 사유를 시도하게 한다. 다른 차원의 여러 재료들(생각, 글, 회화, 설치, 영상, 행위 ...)이 무수히 충돌하며, 갈등하고 조화한다. 글은 생각의 언어로써 궁금한 것들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매체이다. 물음을 찾고 물음에 대한 스스로의 답을 적고, 그것을 읽고 다시 묻는 것,이 연속된다. 그것이 작가의 영역 안에서 쓰기의 역할이다. 절제된 언어는 사유의 영역을 넓힌다.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믿기 때문에, 상대(사람, 사물, 감정, 이론 등..)의 감추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을 궁금해 한다. 그 궁금함을 탐구하고 쓰고 행위로서 가두고 해방시킨다. 그러므로 작가의 움직임으로 완성된 작품 = 물음이다. 답이 아니다.
+장르간 경계는 없다.
설치의 경우, 가장 적합한 재료를 찾아 작품한다. 텍스트와 이미지, 시간과 공간, 리듬과 움직임, 음악과 무용 등 가능한 모든 개념과 물질을 활용한다. 생소한 물성을 인정하고 수용한다. 그 안의 갈등과 화합이 자연스럽다.
+참조, 작가의 언어
1 하양: 잃어 버린 것들 + 버린 것들, 즉 무의식과 의식을 통해 내 안에서 없애버린 사람, 사물, 사건, 감정… 등을 이야기한다
2 핑크: 자궁. 하나의 세계와 다른 세계를 연결 혹은 단절시키는 문으로서 존재한다.
3 가든: 세상에 숨어 자신을 가꾸고 돌보는, 지극히 개인적인 휴식과 반추의 장소. ‘가든’은 영어의 garden과 한글의 마음이 가볍고 상쾌한 상태의 이중의미이다.
4 자아: 자아自我(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는 작가의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작가의 미술과 글에 등장하는 ‘새’는 동음이의어인 자아慈鴉(갈까마귀) 즉, 검은 새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